[페이스북 이우창님 글 펌] 

Dbpia/누리미디어 구독료 인상이 초래한 반응 중 하나는 여러 연구자/대학원생들이 논문 저작권에 따라 발생하는 수익이 논문 작성자 본인들에게 귀속되지 않고 있음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이건 부분적으로 한국 학회의 관련 절차가 미비하기 때문이기도 한데, 영미권 저널은 일반적으로 애초에 저작권 자체를 학회에 양도하는 계약서를 쓴다고 알고 있다. 누리미디어의 무리한 수익창출시도가 대학원생과 시간강사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는 인식은 타당하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논문 저작권 귀속문제에 대한 인식이 "그러니까 논문을 쓰고 있는 우리 연구자들이 논문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지는 경우에 대해서 나는 명백히 비판적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그런 주장이 현실화될 경우, 연구자들은 자신이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참고하게 될 수많은 선행연구에도 편당 마찬가지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최근에 게재한 논문의 경우 꽤 무거운 작업이라서 참고문헌이 100항목이 넘어가는데, 만약 이 모두가 논문이고 편당 6천원으로 계산할 경우 나는 논문 작성에 자료이용료로만 60만원을 지불해야 하는 셈이 된다. 읽었지만 인용하지 않은 작업물까지 포함할 경우 그 비용은 100만원이 훌쩍 넘어간다. 그만큼 자신의 작업이 널리 인용되면 본전을 뽑는 게 아니냐는 순진한 반론이 가능하겠지만, 똑같이 편당 6천원의 수익을 얻는다 가정해도 거의 200명 가까운 독자들이 내 논문을 구매할 경우에만 비용보전이 되는데, 이쯤되면 논문 한 편 쓸 때마다 일종의 투기를 하는 셈이 된다. 그 결과는 저소득/저자산 연구자들부터 학계에서 퇴출되기 시작해 학계 자체의 공멸로 이어진다.

둘째, 좀 더 본질적으로 말하자면 학술장은 애초에 연구자들의 수익창출을 위한 모델이 아니다. 애초에 그 역사적 기원을 따져봐도 감이 오듯, 학술장의 일차적인 목적은 참여자들의 의사소통 증진을 통해 서로의 연구역량을 늘리고 지식생산을 활발하게 하는 데 있다. 제도가 관성화되거나 혹은 형식적으로만 자리 잡으면서 그 의미가 망각되기 쉽지만, 금전적 대가 없이 학회에서 토론을 주고받거나 논문을 읽고 코멘트를 해주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학술장이 동료 연구자들의 상호협력을 통해서 발전하고 존속한다는 사실과 연관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연구자들을 위한 각종 연구비 지원이나 인프라 구축, 연구직 확보 등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연구자들이 경제적 제약 없이 보다 활발하게 지식을 생산하는 걸 촉진하는 데 있지 다른 연구자들, 독자들에게 논문을 팔아 수익을 내도록 하는 데 있지 않다.

물론 나는 (특히 인문분야의) 여러 동료 연구자들이 그저 울분과 신세 한탄에서 논문을 통한 소득의 귀속문제를 제기하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정말로 '내가 쓴 작업물을 판매해 소득을 창출한다'는 의도를 현실화시키고 싶다면 학술장이 아니라 상업적 출판시장을 이용하는 게 맞다. 그게 쓰고-편집하고-공개한다는 기본적인 프로세스를 공유하면서도 학술장과 출판시장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이유다. 지식노동의 상업적인 대가를 받고 싶다면, 학회지에 논문을 투고하여 무료로 동료평가를 이용할 생각을 하는 것보다는 그냥 출판사에 원고를 들고 가거나 독립출판, 혹은 다양한 크라우드펀딩을 시도해보는 쪽이 훨씬 사리에 맞는다. 나는 연구자들에게 돈과 무관하게 도덕적으로 살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다. 내 요점은 단지 이미 멀쩡히 작동하고 있는 상업적 출판시장이 있음에도 그와 구별되는 원리에 따라 작동하는 학술장을 '논문 판매시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판매자가 되고 싶으면 시장에 가서 정당히 경쟁하면 될 일이고, 한국은 연구자의 상업적인 출판을 가로막지 않는다.

이 모든 논의를 지켜보면서, 대학원생들의 논문접속권 문제에 대해 교수들, 행정가들이 보여준 무관심과 함께, 우리의 연구환경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우리의 학술장이 왜,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우리의 학계가 얼마나 무지한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무지는 올바른 해법을 찾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현 사태에 대해서는 차라리 대학원생·시간강사들의 공동 연서명과 같은 행위를 통해 Dbpia/KISS를 여론으로 압박하거나, DB업체들에 논문을 공급하는 학회들이--그리고 이 학회들의 운용을 위한 실질적인 노동력이 주로 대학원생들과 시간강사들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공급거부를 선언하거나, 공적 기구에서 공공논문DB구축 사업을 좀 더 큰 규모로 다시 진행하거나 하는 쪽이 좀 더 상식적인 해법일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개호 의원실은 두고두고 반성하고.

*'니가 뭘 안다고 멋대로 논평하냐'는 예견가능한 오해를 예방하기 위해 2년 전에 썼던 글 두 편을 첨부한다.

http://ppss.kr/archives/70831
http://ppss.kr/archives/73442

공공 데이터베이스와 지식생태계: 누리미디어와 한 국회의원에 관하여
나는 여기에서 시장지배력을 추구하는 한 기업과 어느 정치인의 '협업'이 공공 시스템 전체를 망가트리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사례를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2010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이라면, 이명박 정부의 핵심정책이었던 4대강 사업...
ㅍㅍㅅㅅ 원글보기
july
이우창님 인터뷰하신 기사도 떴어요!
사진·파일

TIP 최대 크기 25M 파일을 20개까지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는 드래그해서 순서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
사진·파일

TIP 최대 크기 25M 파일을 20개까지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는 드래그해서 순서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